“발목이 굽어 못걷지만 저는 부끄럽지 않아요”
등록 : 2013.06.25 20:39 수정 : 2013.06.26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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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몽생이 그룹홈’에 머물고 있는 태훈(14)이가 23일 오후 그룹홈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태훈이는 장애가 있어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외출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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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해가 떴습니다 (2013 사랑의 열매-한겨레 공동캠페인)
① ‘몽생이 그룹홈’의 14살 태훈이
<한겨레>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와 손잡고 사회적 관심이 필요한 어린이·청소년들에게 나눔의 손길이 이어질 수 있도록 다리를 놓는 기획을 시작합니다. 첫 사연으로 제주 ‘몽생이 그룹홈’에서 씩씩하게 자라고 있는 장애청소년을 소개합니다.
태훈(14)이는 양쪽 발목이 안으로 굽었다. 날 때부터 발목과 발가락 뼈가 모두 굳어 관절이 굽혀지지 않는다. 벽에 등을 기대고 서도 10초를 못 버틴다. 남들도 다 그런 줄 알았는데, 5살 때 유치원에 가서야 ‘내가 남과 다르구나’ 알았다. 방과 후 집에만 있어야 하는 태훈이는 “밖에서 늦게까지 놀다 어른들께 혼나보는 게 소원”이다.
태훈이의 장애는 다리에만 있지 않다. 신장도 제 기능을 못해 늘 호스로 연결된 소변주머니를 차고 다닌다. 장애가 겹친 태훈이를 아버지는 감당하기 버거웠다. 태훈이가 세살이던 2002년 어느날, 어머니가 뇌출혈로 갑자기 세상을 떠나자 아버지는 실의에 빠졌다. 어머니 장례를 치른 지 일주일 뒤 아버지는 방안에 있던 태훈이를 이불로 덮었다. 갑자기 ‘치이이익’ 소리가 나더니 가스 냄새가 났다. 아버지는 방문을 걸어잠궜다. 라이터 불을 켜려는 순간, 외출했다 돌아온 태훈이 누나가 방문을 쾅쾅 두들겼다. 경찰이 출동한 뒤에야 소동은 끝났다. “아빠도 오죽했으면 그러셨을까 생각해요.” 철이 일찍 들어버린 태훈이는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태훈이 아버지는 그 일이 있고 3년 뒤 위암으로 숨졌다.
발목 굳어 서기조차 힘든데다
항상 소변주머니 의지해 생활
돌봐줄 부모도 친척도 없어
제주 그룹홈서 누나와 살아
다행히도 수술 희망 생겼지만
치료비 1000만원 없어 ‘발동동’
태훈이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부터 제주시 화북동의 ‘몽생이(망아지를 뜻하는 제주말) 그룹홈’에 살기 시작했다. 큰아버지와 작은아버지, 할아버지가 모두 돌아가셔서 태훈이 남매를 말아줄 친척이 없다. 이곳저곳 떠돌다 정착한 곳이 공동생활 가정인 몽생이 그룹홈이다.
“태훈이는 참 착해요. 소변주머니를 방바닥에 끌고 다녀야 하는 불편한 몸이지만 걸레질을 도맡아 합니다.” 태훈이를 엄마처럼 돌보고 있는 김완숙(44) 원장은 어린 나이에 너무나 어른스워져버린 태훈이가 더 안쓰럽다.
태훈이는 장애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 불편하지만 불행하지는 않다고 믿고 있다. “저는 제가 부끄럽지 않아요. 몸이 장애지 머리가 장애는 아니잖아요.” 오줌주머니가 어떻게 생겼는지 보여주며 태훈이는 발그레 웃었다. 빌라 3층인 몽생이 그룹홈엔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누군가가 늘 태훈이를 업어야 외출할 수 있다. 태훈이도 점점 자라 몸무게가 벌써 26㎏이다. 도움 받기가 미안한 태훈이는 하루 빨리 걷고만 싶다.
그런 태훈이에게 기적같은 희망이 싹텄다. 발을 고쳐주겠다는 의사 선생님이 나타난 것이다. 몽생이 그룹홈의 김완숙 원장이 백방으로 알아본 결과다. 제주대 병원의 주선으로 서울대 병원에서 태훈이를 수술해보기로 했다. 8월 수술을 앞두고 있다.
희망을 품었지만 태훈이는 걱정이다. 다리를 완전히 고치려면, 수술 세차례에 통원치료도 몇차례 필요하다. 서울에 머물 숙소와 교통비·입원비 등이 없다. 김 원장은 “1000만원 정도는 있어야 태훈이 발을 고칠 수 있을 것 같다”며 걱정했다.
태훈이는 최근 컴퓨터 공부를 시작했다. “안철수 아저씨처럼 백신을 잘 만드는 보안 전문가”가 되는 게 꿈이다. 선생님이 땀을 흘리며 자신을 업어 컴퓨터 학원에 데려다 주는 게 미안해, 태훈이는 더욱 공부를 열심히 한다. 지난 4월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이 주는 모범 어린이 표창장도 받았다.
“저는 평생 앉아서 살아야 하는 줄 알았는데 이제 걸을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너무나 기뻐요. 주변 분들이 많이 도와주니까 상처 안 받고 잘 지낼 수 있을 것 같아요.” 꿈을 꿀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태훈이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제주/글·사진 허재현 기자
catalunia@hani.co.kr
‘가정집 보육’ 그룹홈 500곳…운영난 ‘허덕’
최대7명 아이들 가족처럼 생활
사회관심 부족 후원손길 적어
부모를 잃은 아이들은, 규모가 큰 보호시설로 가기도 하지만 소규모 생활시설인 그룹홈으로 보내지기도 한다. 그룹홈은 80~130㎡(25~40평) 규모의 일반 가정집을 활용해, 보건복지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위탁을 받은 일정 자격을 갖춘 일반인이 운영한다. 최대 7명의 아이들이 함께 살기 때문에 규모가 작아 가정에서 지내는 것처럼 느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태훈이가 살고 있는 제주 ‘몽생이 그룹홈’도 이런 곳이다. 태훈이는 신체 장애를 지녀 대형 시설에서 지내면 또래집단에서 따돌림을 당할 수 있는데, 그룹홈에서는 적은 수의 아이들이 선생님과 24시간 가족처럼 함께 생활하기에 이런 일을 막을 수 있다.
문제는 아직 정부 지원이 부족한 편이라는 점이다. 몽생이 그룹홈은 제주시에서 매달 운영비로 원장의 급여 150만원 안팎과 월 운영비 24만원 및 연간 임대료 400만원을 지원받는 게 전부다. 여기에 정부가 아이들에게 매달 지급하는 30여만원의 기초생활수급비로 빠듯하게 살림을 살 수밖에 없다.
태훈이가 치료를 받기 위해 서울을 오가는 데 드는 비용을 걱정할 수밖에 없는 것도 이 때문이다. 김완숙 몽생이 그룹홈 원장은 “대규모 아동보호시설에 견줘 그룹홈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적어 후원금·정부지원금 등이 적은 편이다. 더 많은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1990년대에 본격적으로 생기기 시작한 어린이·청소년 그룹홈은 현재 전국에 500여곳이 운영중이다. 제주시에는 5곳이 있다.
허재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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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기사 :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9326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