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005-06-29 02판 30면 2042자
지난 23일 ‘여성부’에서 명칭을 바꾸고 재출범한 여성가족부의 가족 정책에 대해 말이 많다. 여성가족부는 출범 초기부터 소수의 다양한 가족을 지원하겠다고 밝혔지만 기실 핵가족 중심의 ‘평균 가족’에게만 도움이 된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가족친화 환경을 만들겠다는 정책도 중산층 위주라는 지적이다. 한 여당 의원은 여성가족부의 이런 방향이 정책 근거가 되는 건강가정기본법에서 비롯된 문제라며 여성가족부 출범 뒤, 채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대체입법안을 내기도 했다. 말로만 다양한 가족 지원? =여성가족부는 가족정책의 대상이 독신 같은 1인 가구부터 부모 중심의 핵가족, 이혼가족, 재혼가족, 국제결혼 가족 등이라고 밝혔다. 동성애 가족, 동거 가족, 공동체 가족 등은 제외되는 셈이다. 실제 지금까지 이런 ‘가족’들을 위해 여성가족부가 내놓은 정책은 미혼모를 돕는 ‘중간의 집’의 확대 정도가 고작이다. 여성가족부의 등장으로 현실에 존재하는 다양한 가족에 대한 사회적 인정을 바라던 이들에겐 실망감이 컸다.
이런 이유로 여성가족부의 출범과 동시에 여성계와 민주노동당은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우선 이혼율 증가, 결혼과 출산 기피 현상의 원인을 가족 관계 및 가족구성원 간의 유대가 약화된 데에서 찾고, 이런 현상을 극복하려고 가족간 유대를 강화하겠다는 시도 자체가 보수적이란 지적이다. 민주노동당 정책위원회 김원정 정책연구원은 “여성가족부가 다양한 가족형태를 지원하겠다고 하지만 실은 이를 ‘사회문제’로 바라보는 시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성폭력상담소 이미경 소장은 “여성가족부의 가족정책에 가족의 유지를 바라는 목소리가 주류인 반면, 친족 성폭력 문제나 가정폭력 같은 문제는 뒤로 밀려나 우려스럽다”고 평가했다.
건강가정기본법이 문제?=여성가족부의 가족정책의 뿌리는 건강가정기본법이다. 지난 27일 열린우리당 장향숙 의원은 이 법을 대체하는 가족지원기본법을 국회에 상정했다. 이 대체입법안은 건강가정기본법과 달리 ‘아동을 위탁받아 양육하고 있는 공동체, 민법상 후견인이 있는 공동체, 미혼부·모와 아동으로 구성된 공동체, 그밖에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공동체’라고 가족의 개념을 넓혔다. 이에 따르면 전국 140개 공동생활가정(개별형, 센터형 그룹홈 등) 1200여명의 아동과 청소년이 포함돼 가족정책의 대상이 된다.
하지만 이 또한 한계가 있다. 2008년부터 시행되는 개정 민법에 따르면 가족 범위는 ‘배우자, 직계혈족 및 형제자매 그리고 생계를 같이하는 직계혈족의 배우자, 배우자의 직계혈족, 배우자의 형제자매’다. 장 의원이 낸 가족지원기본법과 가족의 범위가 서로 달라 혼돈이 예상된다. 참여연대와 여성단체 등이 함께 만든 ‘가족지원기본법 제정을위한 공동대책위원회’ 간사인 한국여성단체연합의 박차옥경 국장은 “여성가족부가 정책 대상으로 밝힌 가족 개념의 확대가 필요하며 앞으로 민법 개정의 필요성까지 염두에 두고 시민단체의 의견을 모으려 한다”고 밝혀 앞으로 다시 한번 가족개념 규정에 대한 논란이 빚어질 전망이다.
중산층 가족에게만 도움 된다?=여성가족부가 출산율을 높이고 가족관계를 강화하겠다며 야심차게 내놓은 가족친화적 정책에도 딴죽이 걸렸다. 아버지 육아휴직제도(파파쿼터제)는 여성이 쓰는 육아휴직 가운데 1~3주 정도를 아버지에게 의무적으로 부과해 남성의 양육권을 제도화시키겠다는 의도로 마련했다. 그러나 남성의 육아휴직은 배우자 여성이 무급 육아휴직을 사용하는 경우에 한해서 허용하도록 하고 있다. 여성계와 노동계에서는 이 정책이 대의는 좋지만 맞벌이 부부가 우선 대상일 뿐만 아니라 무급 육아휴직을 쓰지 못하는 저소득층 여성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꼬집는다. 전문가들은 육아휴직을 쓰는 여성이 4%대에 불과한 점을 들어 구호성 정책에 그칠 수도 있다고 지적한다. 한국여성노동자회협의회 손영주 사무처장은 “아버지 육아휴직제도와 마찬가지로 가족친화적 기업환경을 조성하겠다는 정책이나 근무형태의 유연화를 통한 가족생활시간의 확보 등도 대기업과 중견기업 등에 종사하는 정규직이 먼저 혜택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며 저소득층과 비정규직 여성노동자에 대한 형평성 문제를 제기했다.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