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치된 아이들의 희망 ‘그룹 홈’을 기억하세요
입력: 2006년 11월 23일 08:39:55
“이모, 뺨 맞아본 적 있어요? 난 고아원에서 20대 맞아봤어요.” 초등학교 4학년생 미혜(10·여·가명)가 22일 불쑥 고아원의 기억을 털어놓는다. 구구단도 맞으면서 외웠다. 지금도 구구단을 욀 때면 눈물이 난다. 때리는 사람이 없는데도 그렇다. 미혜는 지금 ‘그룹홈’에 산다.
그룹홈 ‘이모’인 박경자씨(가운데)와 김서진씨(오른쪽)가 21일 아파트 단지내 숙소에서 아이들과 즐겁게 놀고 있다. /박민규기자
광주광역시에서 아빠와 단 둘이 살던 미혜는 아빠의 사업 실패로 서울 ‘큰 아빠’ 집에 맡겨졌다가 지난해 1월 고아원으로 옮겨갔다. 고아원은 무서웠다. “선생님과 큰 언니들에게 자주 맞았어요.” 아빠는 가끔 고아원을 찾았다. 하지만 미혜는 아빠가 사라질 것 같은 불안감에 늘 시달렸다. 점점 말수가 적어졌다.
이를 안쓰럽게 여긴 아빠가 지난해 7월 서울의 그룹홈으로 옮겼다. 허리디스크로 막노동조차 못하는 아빠가 걱정이지만 미혜는 이제 한결 달라졌다. 얼마 전엔 태권도 노란띠도 땄다. 승급 심사 때 가장 먼저 손을 번쩍 들고 나가 당당히 합격했다. 말도 많아지고 목소리도 커졌다.
미혜가 사는 그룹홈은 서울 번동의 ‘둥근나라’. 7명의 아이와 2명의 ‘이모’가 모여 산다. 박경자씨(46·여·그룹홈협의회 회장)가 운영한다. 아이들은 박씨를 ‘작은 이모’, 김서진씨(27·여)를 ‘자두 이모’라 부른다. 자원봉사자 2명은 ‘장미 이모’ ‘딸기 이모’로 불린다. 박씨는 “아이들이 가족을 포기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보육교사들을 이모로 부르게 한다”고 말했다. 둥근나라 입소 조건은 세 가지다. ‘부모가 친권을 포기하지 않을 것’ ‘형편이 나아지면 아이를 데려갈 것’ ‘주1회 아이를 보러 올 것’이다. 그래서인지 아이들은 거의 다 집으로 되돌아간다.
지난 1월 집으로 되돌아간 민수(7·가명)가 좋은 사례다. 민수는 5살 때 이 곳에 왔다. 엄마가 집을 나간 뒤였다. 민수 아빠는 아이를 보낸 뒤 2년간 억척스럽게 일해 돈을 모았다. 그리고 거처를 마련했고 민수를 데려갔다. 박씨는 “아이들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때가 가장 뿌듯하다”고 말했다.
보라(5·여·가명) 엄마는 “조금만 더 모으면 보라를 데리고 살 수 있다고 생각하면 힘이 난다”고 말했다. 신용불량자인 그녀는 박씨에게 그동안 모은 10만원짜리 수표 10장을 보여줬다고 한다. 혜영(5·여·가명) 아빠는 혜영이가 둥근나라에서 점차 안정을 찾고 있다며 “살맛 난다”고 말했다.
‘이모들’에겐 이번 겨울나기가 걱정이다. 월 20만2천원에 불과한 정부 지원으론 생활이 불가능하다. 후원금도 많지 않다. 박씨가 그룹홈 홍보활동에 가장 힘을 쏟는 이유다.
〈이고은·김다슬기자
freetree@kyunghyang.com〉
◇그룹홈
가정 해체로 학대받거나 방치된 아이들이 일반 가정과 유사한 환경 속에서 자라게 하기 위한 시설. 수용인원이 7명 이하여서 고아원과는 다르다. 전국적으로 170여곳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