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전 어머니가 숨진 뒤 아버지와 단둘이 생활하던 A군(14)은 지난 4월 교통사고로 아버지마저 잃고 말았다. 딱한 사정을 알게 된 경찰관이 A군 할아버지에게 “손자를 맡아 달라”고 했지만 할아버지는 “경찰이 알아서 하라”며 연락을 끊었다. 경찰관은 관할 구청을 찾아가 후견인 선정을 요청했다.
하지만 A군 문제는 3주가 지나도록 어떤 해법도 찾지 못했다. 구청 측은 지역의 전문가들을 모아 회의를 열었지만 결론을 내지 못한 채 우왕좌왕했다. 당시 회의에 참석했던 그룹홈(소규모 보육시설) 최모(43) 원장은 “구청 직원이 후견인 선임에 관한 기본 절차조차 모르는 상태였다”고 말했다. 그런데 A군 할아버지가 갑자기 후견인이 되겠다고 나섰다. A군 앞으로 수억원의 사망보험금이 나온 시점이었다. 구청 측은 “법적으로 우선권이 있는 만큼 승인해줘야 한다”며 법원에 할아버지를 후견인으로 청구했다.
A군 사례에 대해 전문가들은 “보호대상아동 문제를 담당할 정례화된 기구가 없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아동복지법 12조는 시·군·구청이 아동복지심의위원회를 두고 부모 등 보호자가 없는 보호대상아동 문제를 논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위원회는 ▶후견인 선임 ▶친권 행사의 제한·상실 ▶시설 위탁 등을 심의한다.
그러나 본지가 확인한 결과 서울시 25개 구청 가운데 아동복지심의위원회를 설치한 곳은 단 한 곳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 구청에서 관련 사안이 있을 때마다 임시 위원회를 소집하고 있을 뿐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대부분의 보호대상아동은 후견인을 찾지 못한 채 양육시설로 ‘직행’하는 게 현실이다. 지난 6월 관악구 베이비박스에서 발견된 세 살배기 여자아이는 관할 구청에서 일주일간 검토한 후 양육시설로 보내졌다. 아동복지법상 시설보호는 가정위탁이나 대리 양육 등이 불가능할 때 선택하는 마지막 수단이다. 이에 대해 구청 측은 “가정위탁을 하려면 희망자를 찾아야 하는 등 시간이 많이 소요된다”며 “ 곧바로 시설 입소를 추진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지난 5년간 235명의 아이가 통상 2주의 검토 기간을 거친 후 시설로 보내졌다. 성균관대 아동학과 이양희 교수는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에서 아이들 대부분이 시설로 가는 게 말이 되느냐”며 “ 아동복지심의위원회를 활성화해 아동 보호를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민관 기자
kim.minkwan@joongang.co.kr
김민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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