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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을 사흘 앞둔 4일, ‘햇살 고운집’ 아이들은 남보다 조금 일찍 설을 맞았다. 설 연휴 때는 각자의 부모에게 돌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설 상이 차려지기 직전, 신이 나 함박웃음을 짓는 아이들 모습이 남매나 다름없다.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정우·지원·승희·진우. [사진=한은화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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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 살 난 승희(가명)는 경기도 고양시의 2층짜리 단독주택에서 이모와 함께 산다. 올해 중학교에 입학하는 지원(13·가명) 언니와 정우(13·가명) 오빠, 남동생 진우(3·가명)도 한 식구다. 승희가 줄곧 이곳에서 산 건 아니다. 지난해 10월 엄마와 함께 살던 지하 단칸방에서 옮겨 왔다.
처음 이모와 만났을 때 승희는 욕실로 직행해야 했다. 목욕을 한 지 너무 오래됐기 때문이다. 욕실에서 승희는 처음 보는 하늘색 물감을 온 벽에 바르며 놀았다. 치약이었다. 승희는 하루 세 끼를 과자로 때우기 일쑤였지만 양치질을 해본 적이 없었다. 치아가 심하게 썩은 것을 발견한 이모가 수소문 끝에 한 치과에서 무료 치료를 받게 해줬다. 그날 승희는 “이모, 나 이빨 제대로 나는 거죠?”라며 오랜만에 함박웃음을 지어보였다.
승희네 집은 보호가 필요한 아동에게 일반 가정과 같은 환경을 제공해주는 ‘아동 그룹홈’이다. 고아원 등 대규모 시설과 달리 최대 정원이 7명인 그룹홈은 만 18세까지 아이들을 길러준다. 승희의 이모는 친이모가 아니라 그룹홈을 운영하는 사회복지사 김지량(37·여)씨다.
승희는 엄마가 “아이를 기르는 게 불가능하다”며 고양시청에 하소연해 이곳에 오게 됐다. 나머지 3명도 비슷한 사정으로 식구가 된 것이다. 정우와 진우가 친형제인 것을 제외하면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아이들은 이곳에서 서로에게 또 하나의 가족이 돼주고 있다.
지난해 5월 한 독지가로부터 월 40만원에 집을 빌려 ‘햇살 고운 집’이란 이름의 그룹홈을 연 김씨는 4일 “가족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아이들을 변하게 하는지 실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10월 햇살고운집에 온 정우는 누구와도 눈을 마주치려 하지 않았다고 한다. 어깨까지 내려온 긴 머리카락을 자르는 일도, 반찬을 먹는 것도 거부했다. 부모가 이혼한 후 종일 TV에만 매달려 있었다. 관심을 가져주는 식구가 없다 보니 사회성을 잃고 말았다. 그런 정우가 햇살고운집에 와 이모의 사랑을 받고 난 뒤 바뀌었다. 얘기도 잘하고 장난까지 칠 줄 알게 됐다. 정우는 “여기선 배고프다고 하면 밥 차려주고, 아프다고 하면 병원에도 데려가 주잖아요”라고 웃으며 말했다.
아이들은 지금 사는 곳이 그룹홈이라는 것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지원이는 최근 학교에서 “우리 이모는 사회복지사입니다”라며 가족 소개를 했다. 학교 친구들을 집에 데려와 놀기도 한다. 지원이는 “함께 살면서 모두가 정말 많이 변했는데, 그게 저도 신기해요”라고 말했다.
자비로 햇살고운집을 꾸려온 김씨는 “고아원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긍정적 효과가 아이들에게 나타나고 있다”며 “하지만 그룹홈은 대규모 시설에 비해 후원이 잘 들어오지 않아 아이들이 커갈수록 공부시키는 게 큰 문제”라고 우려했다.
햇살고운집에선 4일 설 상이 차려졌다. 원래 가정을 회복시키는 게 그룹홈의 궁극적 목표여서 설 연휴 때면 아이들이 부모에게 돌아가기 때문이다. 이날 오전 이모 김씨가 부엌에서 떡국과 잡채, 닭도리탕 등을 요리하는 동안 승희와 지원이는 서로 예쁜 옷을 입겠다고 토닥거렸다. 그것도 잠시, 승희가 막내 진우에게 “기차 토마스는 바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