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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북구 수유동 막다른 골목 끝에 1층짜리 작은 빌라가 있다. 이 집에는 고등학교 1학년생부터 태어난 지 두 돌 안된 아기 등 다양한 나이대의 남자 아이 5명이 살고 있다. 이곳은 부모로부터 버림받은 아이들이 모여 사는 '그룹홈', 아동공동생활가정이다.
내년 환갑을 맞는 장영숙 씨는 17년째 이곳에 홀로 거주하며 아이들을 키우고 있다. 성인이 돼 독립한 아이들까지 합하면 그녀의 아이는 총 23명이다. 그녀는 17년간 아이들을 먹이고, 입히고, 씻기고, 공부시키고, 자신을 버린 부모와 세상을 향한 아이들의 분노와 상처를 어루만져줬다. 365일 24시간이다.
그녀는 국가로부터 연 7100만원을 받는다. 이 중 4500만원은 출퇴근 도우미 인건비로 나간다. 이처럼 유지 자체가 기적인 그룹홈은 전국에 510개가 있고 이곳에 사는 아동 수는 2758명이다.
그런데 장씨가 17년 만에 처음으로 1인 시위에 나서고 있다. 정부가 내년 그룹홈 예산으로 175억3200만원을 책정하면서 최저임금도 안되는 급여가 동결될 것이라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문재인정부 대표 캐치프레이즈인 '사람중심경제'만 믿고 기다리던 그녀의 외침에 응답한 건 의외로 야당인 바른정당의 정병국 의원이었다.
정 의원은 지난 7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서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그룹홈은 아동복지시설임에도 일반예산이 아닌 복권기금으로 지원되고 있다"며 "그러다 보니 근로조건이 열악하고 전문 인력 유입이 어렵다"고 지적했다. 김 부총리도 정 의원 뜻에 동의를 표했다. 그러고 이틀 뒤. 그룹홈 지원예산은 당초 정부안보다 42억원 증액된 217억5300만원에 국회 기재위 예산결산기금소위를 통과했다.
전체 429조원의 예산을 논하고 있는데 '고작' 42억원 증액 갖고 호들갑을 떠는 건, 그만큼 과거 정부와 정치권의 예산 처리 과정이 실망스러웠기 때문이다. 정치인은 자기 지역구 챙기려 '쪽지 예산' '예산 맞바꾸기'를 일삼았고, 정부는 티나고 빛나고 폼나는 사업에만 관심을 가졌던 게 사실이다.
하루아침에 많은 게 바뀌긴 힘들겠지만 시작은 나쁘지 않다. 여야정이 한뜻이라 나름 감동도 있다. 남은 11월, 많은 예산 사각지대가 메워지길 기대한다.
[경제부 = 이유섭 기자 leeyusup@mk.co.kr]